아이를 재우고 소파에 한참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 글을 쓴다.

 

#1

2020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늘상 연말이 되면 느끼던 약간의 들뜬 기분이 올해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마음 한켠에 자리한 무거운 짐이 나를 계속해서 침잠하게 만든다.

올해 초에는 엄마가 올해 말에는 동생이 큰수술을 받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들의 건강이 무너지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가족들은 언제까지고 내 곁에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그들이 언제든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불편한 사실을 자각한 이후로 내 삶이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 힘겨워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웃고 떠드는 사회생활을 해야한다. 어른이니까.

힘들다고 투정부릴 수도 없고, 내 짐을 다른사람과 나눌 수도 없다.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일은 내가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이라 많이 힘이 든다.

 

#2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났다.

처음에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였던 바이러스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나 썼던 마스크는 어느샌가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날마다 지역 내 확진자를 체크하며 휴일을 집에서만 보내는게 일상이 된 한 해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생각보다 잘 적응해 가고 있다.

코로나가 트리거가 되어 예상보다 빠르게 언택트 시대가 도래했고 AI, IT, BT 등의 기술혁신과 세계적인 경제성장률 둔화 등의 여러 잠재적 요인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이끌어 궁극적인 미래사회에 한걸음 성큼 다가간 것 같다.

변화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10년의 변화가 올 한해에 일어난 일들과 견줄만 한 것 같다. 가히 격변의 시대라 할만하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큰 고민없이 남들 사는대로 공식처럼 정해진대로 살아가던 시절은 이제 저무는 것 같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잘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터인데..

 

#3

아들은 잘 자라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아들이 말을 잘 못할 때에는 말귀를 알아들으면 육아가 훨씬 수월해질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말을 잘 하는 지금이 더 힘들다. 개구쟁이라 장난도 많이 치고 훈육이 필요한 잘못된 행동도 많이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지만, 잠을 잘 때가 가장 예쁘다.

아들이 말을 안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부족한 점도 많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더 기다려주지 못하고 더 달래주지 못하고 더 놀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들한테 미안하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4

학교에 새로운 교수님이 오셨다.

한 분 모시는 것도 쉽지 않아 수 년을 기다렸는데, 운 좋게도 올해부터는 두 분의 교수님과 함께하게 되었다.

두 분 모두 성품이 훌륭하신 것 같다. 좋은 직장동료이자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학과의 막내교수로 혼자서 힘에 부쳐 했었던 일들도 이제는 후배교수님들과 함께 수월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학과장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구나. 전교수님 감사합니다.

 

고단했던 2020년이 끝나간다.

인생사 새옹지마지만, 힘든일은 올해로 끝나고 내년에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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